지금은 쉬고있지만 한동안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나의 삼성헬스 앱 기록에 따르면 2022년 한해동안 37회를 달렸으니, 다소간의 월별 편차를 차치한다면 1년동안 달에 3번을 달렸다고 할 수 있겠다. 경로는 항상 동일 했고 거리는 5KM가 조금 넘는 평로였다.
달리기로 마음 먹자마자 5만원대 런닝화와 3만원대 운동복, 만원대 형광조끼(야간에 달렸다)를 대충 인터넷으로 주문해 입고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경로를 그냥 달렸다. 처음에는 달리다 걷다를 반복 하였지만, 기간이 지날수록 적당히 느린 속력을 찾아 걷는 횟수와 거리를 줄여 나중에는 달리기 완주도 몇번 성공 했었다. 그러나 40~45분정도 되었던 소요시간은 1년 내내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나는 삶의 여러 영역에서 스트레스가 수년 째 누적되어 극에 달해 있었고, 나의 마음은 죽음의5단계를 종횡무진 널뛰고 있었다. 원체 비관적이고 쓸데없는 걱정을 자주하는 성격의 영향도 있겠으나, 불쑥불쑥 이는 분노와 절망으로 좀체 밤잠에 들지 못했었다.
1시간 반의 미어 터지는 출근에 이은 야근은 체력을 좀먹었고, 한번씩 발생하는 휴일근무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직장 동료와의 갈등은 마음의 화가 되어 쌓여갔다. 비현실적인 부동산 가격에 내집마련은 요원했고, 2년마다 새 거처와 추가대출을 찾아 헤매며 혹,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삶을 비관했다. 매달 대출이자와 생활비, 카드대금을 계산하며 현실을 말하는 남편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으로 귀결 되었으며, 아직 아이가 없는게 천만다행이라는 아내의 말은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였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모든게 무능한 내 탓 이였고, 그렇게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있었다. 어쩌면 뻔한 걱정에 다들 그렇게 산다 말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다들 그렇게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라도 변화가 있을까 싶어 1년을 달려보았지만 체력도, 마음도, 삶도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것 인지, 기간이 짧았던 것 인지, 횟수가 적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1년인데 바뀐게 없다니 알 수 없는 묘한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그럼에도 달렸던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입안이 마르면 빨리 지치기에, 사탕 하나를 입에물고 별다른 준비운동 없이 가볍게 달리기 시작한다. 출발한지 3분 남짓, 500M가 채 되지 않은 거리만 달려도 마법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루종일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와 걱정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한가지 생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만 뛸까?”
두 다리는 물속에 있는 것 처럼 둔해지고, 가쁜 호흡은 아무리 공기를 들이마셔도 마치 빨대로 숨을 쉬는 것 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해소되지 않는 산소갈증을 느끼며 달린지 15분쯤 되면 술 마신 것 처럼 얼굴이 붉어지며 열이나고, 나중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다 못해 밭 갈다 지친 소처럼 걸쭉한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 지면 드디어 내게도 러너스 하이 라는게 오나 싶어 기대하지만, 이놈의 중추신경계는 뭐가 문제인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숨막힐듯한 스트레스는 진짜 숨이 막히면 사라졌다.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도망쳐 도착한 곳이 육체적 고통 이라는게 아이러니 했고 선택지가 고통 뿐 이라니 결국 삶은 고통인가 싶었지만, 달리는 순간 만이라도 고뇌가 사라진다는 것과, 고작 달리는 것 으로 잊혀질만큼 하찮다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달렸던 이유였다.
지금도 바뀐것 없이 삶은 고되고 앞날은 보이지 않으며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당장은 여타의 사유로 달리기를 쉬고 있지만 곧 다시 달릴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는, 아니면 언젠가는 발전적인 목적으로 달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