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소송의 경험-1

2017년도에 변호사 없이 민사소송을 직접 진행 했던적이 있다(소가 50만원 정도의 소액 사건이었다). 내가 원고였고, 이후 추가적으로 계좌압류등을 하면서 사건이 늘어나다가 2019년도에 다다라 서야 모든일이 마무리 되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사실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사회 불만과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분노의 표출구로 소송을 선택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재판 출석을 위해 휴가를 쓰는 등 소송을 신경 쓰느라 어지간히 스트레스만 받은 3년여간의 송사였다.

대략적인 일의 발단은 이렇다. 거주하던 원룸의 임대차계약이 만료될 때 쯤, 임대인은 전등이나 벽지 등 시설물의 노후화를 트집잡아 보수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 하겠다고 하였다. 임대인이 문제삼은 것들은 내가 입주할 때도 새것이 아니었으며, 고의나 실수등으로 내가 파손한 것 또한 없었다. 임대인의 주장대로라면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임차인은 항상 새집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가 되었고, 당연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보수비가 공제된 보증금을 돌려받아 이사는 잘 마무리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생각할 수록 너무 화가났다. 임대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당장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주거를 위협받게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이견개진할 수 없었다. 임대인은 얼마든지 강압적일 수 있었고 나는 한없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마음을 앓던 나는 결국 소송을 하기로 결심하고 며칠에 걸처 법과 사례를 찾아가며 소장을 작성했다. 임대인이 공제한 비용은 필요비이므로 나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로 소송을 신청했다. 소가 50만원정도의 소송에 10만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일은 더이상 나에게 있어 합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억울한 마음앓이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치듯 소송을 신청했지만, 소심한 나는 한편으로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재력가(무려 원룸 건물주였다)인 상대가 나를 괘씸히 여겨 손해를 감수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고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사실관계를 뒤로한 무분별한 트집잡기식 소송을 남발하여 나를 피폐하게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매말라갈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댈 수 있는것은 부디 이 나라의 법이 약자를 보호하고 명백하게 공정을 판결하여 분쟁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소송이 진행되며 임대인의 주장을 담은 서면들이 나에게 등기로 송달되었다. 서류에는 내가 하지않은 말을 하였다 하고, 하지 않은 일을 하였다 하며, 내가 불손한 의도를 품고 있다는 거짓과 날조점철된 임대인의 주장의 씌여 있었다. 아무리 내가 소송을 제기 했다지만 그 내용의 뻔뻔함에 어처구니가 없었고,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마치 철천지 원수를 만나 분노를 토해내는 듯 하여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애초에 임대인과는 감정의 골이 생길 만큼의 접촉 자체가 없었기에 나를 다른사람으로 착각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의문속에 몇차례의 준비서면을 주고 받으며 6개월 정도가 흐른 뒤에야 비로소 변론기일이 잡혔다.

그간 변호사 위임장이 송달되지 않은것을 보아 임대인도 소송에 나홀로 대응 중 이니, 이제 재판장에서 당사자간 직접 얼굴을 맞대고 다툴 때가 온 것이다.

나머지는 2편에서……

달리기

지금은 쉬고있지만 한동안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나의 삼성헬스 앱 기록에 따르면 2022년 한해동안 37회를 달렸으니, 다소간의 월별 편차를 차치한다면 1년동안 달에 3번을 달렸다고 할 수 있겠다. 경로는 항상 동일 했고 거리는 5KM가 조금 넘는 평로였다.

달리기로 마음 먹자마자 5만원대 런닝화와 3만원대 운동복, 만원대 형광조끼(야간에 달렸다)를 대충 인터넷으로 주문해 입고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경로를 그냥 달렸다. 처음에는 달리다 걷다를 반복 하였지만, 기간이 지날수록 적당히 느린 속력을 찾아 걷는 횟수와 거리를 줄여 나중에는 달리기 완주도 몇번 성공 했었다. 그러나 40~45분정도 되었던 소요시간은 1년 내내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나는 삶의 여러 영역에서 스트레스가 수년 째 누적되어 극에 달해 있었고, 나의 마음은 죽음의5단계를 종횡무진 널뛰고 있었다. 원체 비관적이고 쓸데없는 걱정을 자주하는 성격의 영향도 있겠으나, 불쑥불쑥 이는 분노와 절망으로 좀체 밤잠에 들지 못했었다.

1시간 반의 미어 터지는 출근에 이은 야근은 체력을 좀먹었고, 한번씩 발생하는 휴일근무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직장 동료와의 갈등은 마음의 화가 되어 쌓여갔다. 비현실적인 부동산 가격에 내집마련은 요원했고, 2년마다 새 거처와 추가대출을 찾아 헤매며 혹,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삶을 비관했다. 매달 대출이자와 생활비, 카드대금을 계산하며 현실을 말하는 남편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으로 귀결 되었으며, 아직 아이가 없는게 천만다행이라는 아내의 말은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였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모든게 무능한 내 탓 이였고, 그렇게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있었다. 어쩌면 뻔한 걱정에 다들 그렇게 산다 말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다들 그렇게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라도 변화가 있을까 싶어 1년을 달려보았지만 체력도, 마음도, 삶도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것 인지, 기간이 짧았던 것 인지, 횟수가 적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1년인데 바뀐게 없다니 알 수 없는 묘한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그럼에도 달렸던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입안이 마르면 빨리 지치기에, 사탕 하나를 입에물고 별다른 준비운동 없이 가볍게 달리기 시작한다. 출발한지 3분 남짓, 500M가 채 되지 않은 거리만 달려도 마법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루종일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와 걱정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한가지 생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만 뛸까?”

두 다리는 물속에 있는 것 처럼 둔해지고, 가쁜 호흡은 아무리 공기를 들이마셔도 마치 빨대로 숨을 쉬는 것 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해소되지 않는 산소갈증을 느끼며 달린지 15분쯤 되면 술 마신 것 처럼 얼굴이 붉어지며 열이나고, 나중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다 못해 밭 갈다 지친 소처럼 걸쭉한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 지면 드디어 내게도 러너스 하이 라는게 오나 싶어 기대하지만, 이놈의 중추신경계는 뭐가 문제인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숨막힐듯한 스트레스는 진짜 숨이 막히면 사라졌다.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도망쳐 도착한 곳이 육체적 고통 이라는게 아이러니 했고 선택지가 고통 뿐 이라니 결국 삶은 고통인가 싶었지만, 달리는 순간 만이라도 고뇌가 사라진다는 것과, 고작 달리는 것 으로 잊혀질만큼 하찮다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달렸던 이유였다.

지금도 바뀐것 없이 삶은 고되고 앞날은 보이지 않으며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당장은 여타의 사유로 달리기를 쉬고 있지만 곧 다시 달릴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는, 아니면 언젠가는 발전적인 목적으로 달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테스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달은 우리가슴 일편 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한다.